바니타스 회화에서 시든 꽃, 썩어가는 과일, 꺼진 촛불은 인간의 삶과 아름다움, 부와 쾌락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아무리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도 시간 앞에서는 소멸한다. 부패는 삶의 덧없음과 죽음을 상기시키는 상징적인 장치로 사용되어 왔다. 탐스럽던 과일에 곰팡이가 피고, 음식의 색이 변하고, 형태가 녹아내리면 우리는 그것을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변화한 표면에도 새로운 색채와 질감, 형태가 존재한다. 이 작업은 부패를 아름다움의 소멸뿐 아니라 새로운 형태가 생겨나는 과정으로 바라보며, 무엇을 아름답고 불쾌하다고 판단하는지 그 기준에 질문을 던진다. 이번 호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물질적 변화를 상징에서 분리하여 미적 가치를 변화시키는 사건으로 다룬다.


상한 사과를 들여다보면 이전에는 없던 색채의 변화, 불규칙한 무늬, 복잡한 표면이 생겨 있다. 이러한 변화는 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변화이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원하는 이상적인 과일의 상태에서는 벗어나 있다. 우리는 사과가 가장 신선하고 매끄러운 상태를 아름답다고 정하고, 그 상태에서 벗어나면 가치를 잃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사과는 시간에 따라 물질적으로 변화했고 변화한 사과의 표면을 미적으로 어떻게 평가할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음식과 의복은 장식의 방식에서 서로 닮아 있다. 케이크 위에 여러 겹으로 쌓인 크림은 드레스의 러플을 연상시키고, 장식과 작은 과일은 의복의 비즈나 자수처럼 표면을 채운다. 부드러운 색채와 반복되는 무늬, 부풀어 오른 형태는 두 영역에서 모두 화려함과 풍성함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이번 화보에서는 이러한 유사성을 활용해 음식과 의복의 경계를 흐린다. 부패한 음식을 연상시키는 색과 형태를 의상에 적용하고, 정교하게 꾸며진 식탁과 인물을 하나의 정물처럼 배치했다. 본래 다른 용도를 가진 대상들이 비슷한 시각적 특징을 공유하게 된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새로운 표면의 질감과 색채을 획득한 물질은 이번 패션 호의 주요 모티프가 된다. 음식이 부패하고 변형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규칙한 무늬와 색채, 녹아내리는 형태와 다양한 표면을 의복의 소재와 실루엣, 장식적인 요소로 옮겨왔다. 곰팡이가 번져가는 듯한 패턴은 의상의 스팽글과 겹쳐지고, 흘러내린 크림과 촛농은 부풀어 오른 드레스의 구조와 늘어진 장식으로 표현된다. 얼룩과 변색 제거해야 할 요소가 아니라 의상을 구성하는 새로운 시각적 요소가 된다.


이러한 의상은 고전 회화의 구도와 조명 안에 배치된다. 오래된 유화를 연상시키는 색채와 정적인 인물의 자세, 정교하게 차려진 식탁과 장식적인 공간은 전통적인 아름다움의 형식을 가져온다. 그러나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은 완벽하게 정돈된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접시 위에 놓이고, 화려한 드레스에는 얼룩이 남아 있으며, 장식처럼 쌓아 올린 촛불은 서서히 녹아내린다. 고전 회화의 형식은 유지되지만 그 안을 채우는 소재와 질감은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난다.






NOT FOR CONSUMPTION은 음식이 상하고 변형되는 과정에서 발견한 색과 형태, 질감을 패션으로 옮긴 작업이다. 곰팡이를 닮은 패턴과 얼룩진 직물, 녹아내리는 장식은 고전적인 의복과 회화적 공간 안에서 새로운 조합을 이룬다. 우리가 일상에서 감추는 흔적들이 이곳에서는 이미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상한 음식이 다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서의 가치를 얻게 되는건 아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정해져 있을 필요는 없다. 이번 호는 익숙한 사물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시각적 특징을 의복과 이미지로 옮겨보는 시도다. 신선하고 완벽하게 정돈된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사물의 표면에서는 새로운 형태와 질감이 만들어진다. 그 변화의 흔적을 따라가며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겨온 것들의 범위를 조금 넓혀본다.




